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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아플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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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ميشيل عفلق
  • 생몰년도 : 1910년 1월 9일 ~ 1989년 6월 23일
1. 개요
2. 생애
3. 사상
4. 여담


1. 개요[편집]


미셸 아플라크는 시리아, 이라크의 정치인, 아랍민족주의, 아랍사회주의의 이론가로 1947년 바트당을 창당한 인물이다. 아랍계 기독교인 입장에서 무슬림들과 화합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모든 아랍인들이 종교를 떠나 단일 국가로 통일해야 하며 단일화된 아랍 국가는 사회 정의 원칙에 기초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미셸 아플라크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정교회 신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리아의 아랍 기독교인들은 종파에 따라 서로 견해가 달렸는데 그의 가정이 속한 기독교 종파는 그리스 정교회와 동일한 교리를 믿되 아랍어로 예배를 보는 이른바 안티오키아 정교회에 속해있었다.[1]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유학한 그는 살라흐 앗 딘 알 비타르를 만나 친분관계를 쌓았으며 1932년 시리아로 돌아와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시리아-레바논 공산당이 프랑스 식민 당국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플라크는 공산당과의 관계를 끊고 소르본 대학에서 친분을 쌓았던 살라흐 앗 딘 알 비타르와 함께 1947년부로 바트당을 창당하였다.

3. 사상[편집]


미셸 아플라크는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분리된 형태의 정부 형태를 지향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아랍 세계가 과거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와 마찬가지로 종교를 초월하는 하나의 아랍 국가로 통합되어야만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플라크는 서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모두 비판적이었으며, 변증법적 유물론에도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주장한 바트주의 사상은 서구에서 정의한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가 아닌 아랍 문화를 반영한 고유의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4. 여담[편집]


이라크 바트당의 사담 후세인은 미셸 아플라크가 사망하기 직전에 비공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주장하였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미셸 아플라크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카더라 이야기는 사담 후세인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순니파 근본주의자들을 달래고 바트주의의 정당성을 무슬림들 앞에서 홍보하기 위해서 부풀린 말로 추정할 수 있다.



[1] 마론파교황수위권을 인정한 중동의 기독교 종파들이 무슬림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정교회는 무슬림들과 충돌이 적은 편이었다.